악몽 惡夢

너울너울 쉴 새 없이 몰려와 해변을 한껏 흩트려놓던 파도는 어느 날부턴가 잔잔해졌지만 그저 폭풍전야였을 뿐 나는 아직 극복하지 못했나 보다 누군가의 조그만 입김에도 쓰나미가 몰려온다 폭풍우가 몰아친다 그 바다로 힘없이 휩쓸려가며 계속해서 되뇌었다 나는 아직 이겨내지 못했구나 나는 아직, 나는 아직.

이맘때의 온도가 내겐 너무 버겁다. 순식간에 얼렸다가 다시 삽시간에 녹아버리는, 가을은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며 내 안에서 아주 큰 무언가를 빼앗아간다. 건조한 공기는 쌀쌀한 바람이 되어 내 온몸을 관통하고 공허해진 심장은 텅 빈 채 시리기만 하다. 더운 날들에 끓어올랐던 생기는 얼어붙어 이전 같지 않고, 존재하던 모든 의욕은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듯 나는 무...

저 거대한 소금물에 나를 집어넣어야겠어요

바다로 갈래요, 짠 내음새가 풍기는 그곳으로 가겠어요 양팔을 활짝 펼치고 거센 바람을 듬뿍 안을래요 뼈부터 내장까지 피부에서 혈관까지 바닷물에 한가득 절여놓을래요 당신이 나를 깨물었을 때 바다가 배어나오도록 입술을 머금을 때 입안에 그득하게 소금물을 담도록 내가 머문 자리마다 짠물이 웅덩이지도록 바다로 갈래요, 저 거대한 소금물에 나를 집어넣어야겠어요 머리...

제발 이 세상에서 날 꺼내줘요

선생님, 세상은 생각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씀하셨죠 그러니 힘들어도 일단 살아봐야 한다고, 언젠간 너도 삶이란 걸 깨닫게 될 거라고. 근데요 선생님. 아무래도 선생님이 보던 세상과 제가 있는 세상이 다른가 봐요 아무리, 아무리 기다려도 아름답질 않아요 여전히 제가 있는 세상은 더럽고, 지옥 같아요 선생님, 선생님이 살던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게 맞나요 저도 ...

사랑은 이제 열병에 효능 없는 싸구려 약이 되어버렸다

사랑이라는 말이 남용되는 세상.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사랑을 주고받는다 한없이 가벼워진 사랑, 그 말은 더 이상 예전만큼의 효과를 지니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에 면역이 생겼다 이제 사람들은 사랑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 무게가 사라진 말은 천지를 떠돌아다니며 우리를 무뎌지게 만들었다 툭툭 던지는 가볍디 가벼운 말, 이도 저도 아닌 어딘가, 그즈음 있을 단어가 되...

21세기, 우울이 유행하고 있어요

우울이 유행인가 봐요. 너도 나도 우울에 잠겨 허우적대고 있어. 고독한 밤에 나 홀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기분이 안 좋아요, 아니 이건 단순히 기분이 안 좋은 게 아니에요. 뭐랄까, 음. 그래, 우울이라 칭하면 되겠네요. 온 사회에 우울이 만연해있어요. 당신도, 나도, 그렇죠. 우린 다 우울하죠. 마음이 울렁여요. 착 가라앉아 답답하다가도 역할...

나는, 적어도 살고 싶었다.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 누군가 내 손을 낚아채주길 바랐다 벗어났다 싶으면 또 다시 빨려들고 더 깊이 가라앉고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그저 살기를 바랐다 잔잔한 바다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쉽게 휘몰아쳤다 물결은 높아지고 커지고 거대해져서 나를 향해 달려왔다 파도는 나를 휩쓸어 끈질기게 끌고 갔다 하얀 물보라들이 지독하...

단언컨대, 내 우주는 단 한 번도 아름다웠던 적이 없었다. 목이 빠져라 올려다봐도 닿지 못할 저 광활한 곳은 언제나 쓸쓸했다. 빛 하나 없는 곳에서 붉은 내음새가 흘러넘쳤다. 한없이 펼쳐진, 가도 가도 끝이 없을 우주에 먼지 한 톨만도 못한 내가 떠올라서 역겨웠다. 빛을 낼 수도 없는 주제에 마치 제 것인 냥 반짝이고 있는 별을 보고 있노라면 깊은 곳으로부...

세상은 지옥이다 발버둥 쳐봤자 이 좆같은 곳을 단 일 미터도 벗어나지 못했다 밑바닥에 있는 자들은 아무리 발악해도 더 아래로 끌려 내려갈 뿐이고 우리를 밟고 저 위에 있는 자들 또한 기껏해야 겨우 빛줄기를 조금 만날 뿐이다 지옥에 사는 우리들은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죽어라 뛰어봐야 거기 어디쯤 똑같이 존재할 뿐 천국은 사치와도 같다 생각하지 않는 게 좋...

그 어떤 말도 내게 위로가 되지 않을 거라면, 애써 내 감정을 설명하지 않을래요.

현실적이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고. 이런 나라도 가끔 밀려오는 감정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미친 듯이 몰려오는 밀물엔 그 어떤 모래도 잠기기 마련입니다.

생기라곤 없던 나날에 설렘이 찾아온 날, 나도 행복이란 걸 느낄 수 있구나 왈칵 눈물을 터뜨렸다.